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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최장집칼럼 --- 장위동 봉제공장의 얼굴 없는 생산자들

[최장집칼럼 --- 장위동 봉제공장의 얼굴 없는 생산자들

창조산업

2011-08-23 14:08:47


2011년 무더운 여름날 최장집교수님 그리고 청장님과 장위동 봉제공장들을 실태조사차 둘러보았다. 그에 대한 소회를 쓰신 교수님의 칼럼을 옮겨 본다

 

[최장집칼럼]장위동 봉제공장의 얼굴 없는 생산자들

얼마 전 한 대학 연구소의 ‘중소영세업작업 장실태조사’팀 조사원들과 함께 봉제공장들이 밀집해있는 성북구 장위동에 갔다. 줄지어 있는 허름한 건물들에는 2000여개의 작은 봉제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건물마다 ‘미싱사, 재단사, 시다 구함’ 같은 구인광고가 붙어있다. 감자탕, 오리탕, 치킨, 호프, 목욕탕, 장위곱창, 김밥나라, 부동산, 미장원, 퀵서비스 같은 어지러운 간판들이 이곳의 풍경을 더 스산하게 한다. 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개 6~7명에서 10명 정도라고 할 때, 약 1만5000명 정도가 이 근방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영세 봉제업 부문에 종사하는 이들 경제활동 집단은, 서울에서만 어림잡아 25만에서 50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서대문구, 용산구, 성동구, 동대문구, 성북구 등 주로 강북 지역에 산재해 있다. 봉제업은 값싼 노동력 공급을 필수 조건으로 하는 기업의 성격 때문에, 임대료와 전세가 상대적으로 싼 주거지역에 위치하고 그 변화를 따라 이동한다. 따라서 이들 영세 봉제 공장 지역들은 서울의 도심 재개발 내지 뉴타운프로젝트가 미친 공간적 파장을 거의 수학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히 보여준다. 마치 파도가 번져 나가듯, 중심부에 가까운 지역에서 변두리 지역으로 이들 기업은 밀려났다. 이곳 장위동도 곧 재개발 계획이 시행되기 때문에 공장들은 포천, 의정부같이 더 바깥쪽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이들 봉제 공장 노동자 구성은 1960~70년대 초기 산업화로부터 지식기반의 첨단산업이 중심이 된 21세기 후기 산업화 시기에 이르는 기간에도 변화하지 않은 한국 노동시장 구조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흡사 저임금 생산직 노동시장 구조의 박물관과 같았다. 이들 봉제업 부문의 노동자들은 전태일의 분신을 통해 오래토록 형상화된 청계천 일대 영세 봉제 공장 노동자와 같은, 1970년대 그 시절의 노동자들이다. 지난 30년 사이 결혼하고 자식을 모두 키운 이후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노동자들이다. 이제는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에 이르는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되었는데, 이들이 봉제업 노동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나머지 노동력은 대개 불법 노동자 신분인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가족노동의 성격이 강한 기업을 운영하면서 노동일을 같이 하는 노동자-고용주들도 많은데, 이들은 주로 남성들이다.


이번 인터뷰에 응했던 여러 고용주-노동자, 재단사들은 봉제업이 영세 사양사업이기 때문에 비용 압박을 많이 받고 또 노동력 부족으로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세금 문제와 불법 노동자 문제는 그들이 당장 직면하고 있는 공통적인 어려움이고 관심사였다. 그들이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사업자 등록을 할 경우 고용, 산재, 건강, 국민연금과 같은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그들은 법의 단속과 공권력을 두려워한다. 이들이 스스로 기꺼이 불법적이기를 선택하는 데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들에 대한 단속은 경찰 외사과 소관인데, 투망식으로 잡아가기 때문에 일제 단속이 시작된다는 정보가 전달되면 일하던 노동자들은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불법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체포돼도 이들 고용주들은 이를 막을 아무 대책이 없다.

봉제 산업이 적지 않은 고용을 흡수하고 도시 서민가구의 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에도, 이 부문의 기업주-노동자들은 정부의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세금도 없고, 보험도 없이 공적 제도 밖에 존재하는 얼굴 없는 사회경제적인 집단이다. 그동안 정부의 산업정책 측면에서 봉제 산업은 버려진 산업이 아닐 수 없다. 한편에는 정부가 모든 가용한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성장동력 부문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는 전체 생산직 노동자의 하층인, 저임금 노동집약적 영세기업 노동자들의 경제활동 영역이 존재한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노동시장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산업부문에 대해 정부가 방치로 일관하는 동안, 정책 결정자들이 의도한 것이든 혹은 태만에 의한 것이든 이들을 합법적 경제영역 밖으로 방출하는 정책을 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분야는 한국경제 발전의 어두운 뒷면을 대표하고 있다고 하겠다. 정부의 이러한 배제적 정책에도 봉제 산업이 그동안 존속해 온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여러 봉제 공장 인터뷰에서 공통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중앙정부이든 지방자치단체이든 정부와 관, 그리고 정치인들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과 냉소적 태도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정부에 대해 나타내는 태도랄까 하는 것은 그들의 요구와 의사를 대변해 주고 그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공적 기관이 아니라, 영세 소기업으로서 약자인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권력기관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국가권력에 대한 강한 피해 의식은 이들의 마음속 밑바닥을 흐르는 강력한 정조이다. 봉제 공장의 노동자들이 갖는 정부에 대한 이미지는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늘날 봉제 산업의 실태는 그동안 한국 민주주의가 이루어 낸 성과를 가늠하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태도 역시 그 내용은 다르지만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저 단순히 자신들과 정치인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무관한 어떤 존재일 뿐이다.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고 자신들을 위해 유익한 정책을 만들고 실현해 주는 정치, 정치인, 정당 같은 것은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않는 눈치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정책적 요구를 대변할 자율적 결사체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 열악한 상황에 대응하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사체를 만들어 그들의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거나,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또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라면 적어도 이상적 기준에서는 정치 참여의 평등이라는 원리에 힘입어 모든 사회적 이익과 요구들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대표되고 조직됨으로써 그들의 이익들이 정치과정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실현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봉제 공장의 고용주-노동자들은 자율적 결사체의 효능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그것을 상상할 수 없고, 그것을 시도할 필요를 느낄 수도 없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정치과정이 곧 경제력의 크기 내지 시장의 불평등한 효과를 그대로 반영해 온 것의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거대 이익 내지 큰 사회경제적 힘들이 일방적으로 대표되고 그들이 압도한 결과, 우리 사회의 약한 이익 내지 약한 사회경제적 힘들이 정책에 거는 기대가 만들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영세 봉제 산업의 고용주-노동자들은 공식 제도 바깥에서 생존하기를 선택하는 얼굴 없는 사회경제적 생산자 집단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소리를 내지 않는 집단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봉제 공장이 밀집한 이 지역에서 정당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뷰에서도 그들은 선거철을 제외하고는 평상시에 정치인들이 공장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정당과 정치인들도 이들과 의사소통이나 접촉을 시도하지 않는다. 전국적인 정당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지역구의 정치인 차원에서도 지역구 내에 있는 이들 사회경제적 인구 집단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은, 정치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 정당의 사회적 기반 없이 민주정치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선거 관련 법률들과 충돌하기 쉽다. 지역 유권자 대중과 항상적인 접촉을 못하게 하는 것이 현 선거 관련 법률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과 제도들이 정치 개혁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실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장위동 봉제 공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결핍된 조건 나아가 한국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살아 있는 현장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최장집 교수 #제조업 실태조사 #장위동 봉제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