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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울속의 외국인 마을

서울속 여기가 한국맞아?"

이태원엔 무슬림마을·흑인마을, 동대문엔 네팔거리·몽골타운… 동부이촌동 日人마을 등 시내 곳곳에 '그들만의 타운' 차도르 쓴 채 쇼핑… "서울이야, 외국이야?" "왜 남의 아내에게 함부로 말을 거냐"등등 풍습 갈등도 자주 보임 

1. 건물 벽면에 페인트를 분무기로 뿌려 그린‘검색하기 그라피티’가 있는 이태원동의‘흑인마을’골목

2. 한남동 이슬람중앙성원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온 무슬림 여성들이 식료품점에서 먹거리를 구입하고 있다.

3.  네팔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모여 있는 창신동의‘네팔 거리’

4.  광희동‘몽골타워’입구에 몽골·러시아 등에서 통용되는 키릴 문자로 된 간판들이 내걸려 있다.

5.  21일 서울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흑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일대엔 가나, 나이지리아, 수단 등 아프리카에서 온 600여명의 흑인들이 거주한다.

 

 

일요일 오전의 한남동 갈보리교회.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흑인 30여명이 미용실 건물 지하의 좁은 방에 모여 예배를 보고 있었다. 가나인 폴 멘세(55) 목사가 "가나의 안녕과 두고 온 가족들의 안녕을 빈다"는 기도와 설교를 끝내자 예배를 드리던 흑인들이 6~7명씩 돌아가면서 찬송가에 맞춰 온몸을 흔들며 격렬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국 교회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 '춤추는 예배'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태원동·한남동·보광동 경계가 만나는 곳에 총 600여명의 아프리카계(가나· 나이지리아· 수단등) 흑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다세대주택이 모여 있는 마을의 좁은 골목. 벽면엔 흑인들이 그려놓은 총천연색 '그라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뿜어 그린 그림)가 요란하다. 그래서 '흑인마을'로 불린다. 골목에 들어서자 키 180㎝가 훌쩍 넘는 큰 체구의 흑인들이 휴대용 카세트를 손에 들고 힙합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악수를 청해왔다.

서울 속엔 이미 '세계'가 들어서 있다. 가나, 네팔, 일본, 프랑스, 몽골, 러시아와 이슬람 국가들까지…. 지난해 서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외국인은 28만여명. 이들은 나라별로 자신의 '마을'을 서울 속에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흑인마을' 골목을 따라 3분쯤 걸어 내려오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성원을 중심으로 이란, 터키 등에서 온 무슬림 2000여명이 이 일대에 산다.

'금요 합동예배'가 있었던 21일 성원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수백 명의 무슬림들 사이사이로 근처 수퍼마켓에서 생수를 구입해 얼굴과 귀, 발을 부랴부랴 씻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슬림들은 예배 전에 반드시 몸을 씻는데, 미처 씻지 못하고 성원에 도착한 이들이다.

30년간 이곳에서 고깃집을 운영해온 김영숙(여·55)씨는 "특히 매주 금요일이면 정말 여기가 한국인지 중동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오후가 되자 터번을 쓴 구릿빛 피부의 남성들과 검은 차도르를 두른 채 눈만 내놓은 여성들 1000여명이 예배를 마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성원에서 이태원소방서로 이어지는 200m 남짓한 거리에 늘어선 무슬림 정육점과 식당, 식료품점에 들어가 장을 봤다. 이곳에서 무슬림 식품점을 운영하는 시라지(44)씨는 "이슬람 신자들은 신에게 기도를 올린 뒤 단칼에 도살한 '할랄 고기'만 먹기 때문에 한국의 다른 지역에선 구하기 힘든 할랄 고기를 사러 하루 100명 넘는 손님이 찾아온다"고 했다.

이태원에서 버스로 20여분 떨어진 동대문시장 일대. 여기는 '제2의 이태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외국인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다. 특히 지하철 6호선 동묘앞역 부근(창신동)은 네팔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무역 점포들이 밀집해 '네팔 거리'로 불린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네팔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두 손을 모은 채 "나마스테(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무역상점엔 '쿠그리'라는 네팔 술과 '짐부'라는 네팔 카레 원료가 진열돼 있고, 네팔 음식을 파는 식당에선 그들이 즐겨 먹는 빵인 '난'을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풍겼다.

여기서 700m쯤 떨어진 곳엔 아예 몽골인들만의 '건물'이 있다. 이 10층짜리 건물의 원래 이름은 '뉴 금호타워'이지만 주민들은 모두 '몽골타운'이라고 부른다. 지하 1층을 포함해 모든 점포의 이름이 키릴문자(몽골·러시아 등에서 통용)로 표시돼 있다. 주말마다 몽골인 200여명이 몰려들어 몽골 신문이나 몽골어 자막의 영화 DVD를 사간다.

◆경제교류 규모 따라 부침 뚜렷

서울의 외국인 마을도 본국과 한국의 경제 교류 상황에 따라 부침(浮沈)이 뚜렷하다. 1997년 말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자 네팔·몽골·러시아 등에서 '보따리 상인'들이 이전보다 값이 싸진 의류와 이불, 전기장판 등을 떼어다 본국에 팔기 위해 동대문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시장 인근에 외국 상인들의 주거지가 만들어졌다. 이들을 위한 식당, 환전소 등이 들어서면서 상권도 함께 형성됐다.

몽골타운은 원래 러시아·중앙아시아인 타운이었다. 1980년대 후반 공산권 국가들의 붕괴로 한국에 들어왔던 러시아·중앙아시아 보따리상들이 광희동 부근에 먼저 '마을'을 조성했다. 몽골인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많이 입국했는데, 같은 공산권 국가 경험을 가졌기 때문인지 이 일대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원단 무역을 해온 김모(48)씨는 "조용한 성격의 러시아인들과 거친 기질의 몽골인들이 서로 문화가 달라 잘 융합되지 않았는데, 결국 터줏대감이었던 러시아인들이 많이 떠났다"고 말했다.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서래마을(반포4동) 역시 국내에 진출했던 프랑스 기업들의 철수로 마을에 사는 프랑스인 수가 크게 줄었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고속철도 테제베, 대형 마트 까르푸 등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프랑스인 유입도 최고조에 달했다. 빌라 월세는 최고 1100만원까지 달했다.

그러나 고속철 사업이 끝나고 까르푸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서래마을도 예전만 못하다. 지금은 월세가 평균 250만원대로 크게 떨어졌다.

외국인 마을 형성은 지역 재개발과도 연관이 깊다. '흑인마을'의 경우 3~4년 전쯤 한남동·보광동 지역의 재개발 예정 소식이 알려지면서 토박이들이 비싼 값에 집을 팔고 떠났다. 그 뒤 집을 사들인 사람들이 싼값에 방을 내놓으면서 원래 이태원 일대에 거주하던 흑인들이 몰려들었다. 구로동의 '조선족 마을' 역시 이들이 원래 모여 살던 가리봉동 지역이 재개발되자 집값이 싸고 전철역이 가까운 구로동으로 옮겨와 최근 3년 사이 '마을'이 형성됐다.

◆'물 위에 뜬 기름'일까

외국인 마을의 외국인들은 대부분 사업, 유학 등으로 3~4년 정도 단기 체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한국인과 어울리면서 한국에 적응하기보다는 같은 나라 출신들끼리만 뭉쳐 지내다 본국으로 떠나려는 경향이 강하다. 주민들과 외국인들 사이에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자주 빚어지고 있다.

아프리카계 외국인이 많이 사는 이태원동에선 "흑인들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린다" "한밤중에 거리에서 시끄럽게 떠든다"는 민원이 동사무소로 자주 들어온다. 경찰도 야간 순찰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실제 아프리카계 외국인 범죄가 발생했거나 한국인들과의 갈등이 표출된 적은 없다.

가나에서 온 마카시 콰슬(44)씨는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아 친해지기 어려운 것뿐이지 흑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하거나 고함을 질러대면 기분이 많이 상한다"고 했다.

구로동 '조선족 마을'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 마을에서 3년째 살고 있는 정모(여·35)씨는 "조선족들이 길거리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니거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 한국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동포들 역시 불만이 많다. 옌볜에서 온 이영창(40)씨는 "이 동네는 사실 우리가 다 먹여 살리는데도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깔보며 함부로 대하는 걸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이태원 '무슬림마을'에선 지난 7일 이슬람 음식점 앞에서 한국인 남자 손님이 검은 차도르를 걸친 이란 여성에게 "당신네 나라에선 이런 음식을 먹느냐"며 말을 걸다가 "왜 남의 아내에게 함부로 말을 거느냐"며 항의하는 이란인 남편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슬람권에선 남자가 유부녀에게 말을 거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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