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김대중 前대통령이 세상에 내보인 ‘네 번의 눈물’ 김대중 前대통령의 세상에 내보인 ‘네 번의 눈물’ 한과 설움 쏟아낸 ‘DJ의 통곡’ … 차마 삼킬 수 없었기에, 차라리 펑펑 울었다 1973년 8월14일 납치·생환후 자택에서김대중 전 대통령은 좀처럼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강조해온 김 전 대통령은 형언키 힘든 간난신고를 겪으면서도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혼자 가만히 눈물을 삼키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새겨진 생애 동안 몇차례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펑펑 울었다. '눈물을 아는' 사람이었고, 그 눈물에는 한과 설움이 녹아있었다. 박 의원은 "늘 세상에 드러난 공중의 삶을 살아온 그분이 세상에.. 더보기
한승수 국무총리의 고 김대중 전대통령 영결식 조사 전문 한승수 국무총리의 고 김대중 전대통령 영결식 조사 전문 (2009-08-23) 우리는 오늘 나라의 큰 정치지도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쾌차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우리들은 참으로 애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온 국민이 큰 슬픔 속에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높이 평가하는 우리 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지금 세계 각국이 대통령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우리 국민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 대통령은 평생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대통령의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더보기
고 김대중 전대통령 영결식에 바친 미래포럼 박영숙이사장의 추도사 전문 고 김대중 전대통령 영결식에 바친 미래포럼 박영숙이사장의 추도사 전문 2009-08-23 14:58:05 2009. 8.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이 낭독한 추도사 전문이다. 김대중 대통령님, 우리의 선생님! 이제는 더 이상 얼굴을 뵈올 수 없고, 말씀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우리와 정말 영영 이별하시는 것인가요? 대통령이 계셔서 든든했는데, 선생님이 계셔서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우리 곁을 떠나신다니 승복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한두 번이 아닌 죽음의 고비를 기적적으로 극복해 내신 대통령님이시기에 병세에 대한 보도와는 상관없이 `대통령님을 한 번만 더 돌려주시라는' 이희호 여사님의 간절한 기도가.. 더보기
김대중 대통령 逝去前 일기 전문 -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 8월 18일 폐렴으로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김대중 대통령 逝去前 일기 전문.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 더보기
김대중 대통령 어록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말씀들 • "나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40년 동안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취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것이 어느 누구든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라며 정치와 관계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는 자들이다.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자들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더보기
청백리(淸白吏) 유관(柳寬) 알기 청백리(淸白吏) 하정(夏亭) 유관(柳寬) □ 출생-사망 :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1433년(조선 세종 15년) □ 호 : 하정(夏亭), □ 본관 : 문화(文化) □ 직책 : 사헌부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을 지냄 □ 청렴성 - 종로구 창신동 골목 안에 살았으며 늘 간편한 사모(紗帽)에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다니기만 하고 수레나 말을 타고 다니는 일이 없었음. - 나라에서 받은 녹은 다리를 놓거나 길을 넓히는 일과 동네 어린이들의 먹과 붓 값으로 썼으며 자신은 논밭이나 별장 하나 없이 청빈한 삶을 지냄 【청렴일화】 ▹ 장마때 천장에서 비가 줄줄새자, 우산으로 비를 막으며 부인에게 "이 우산도 없는 집에선 어찌 견디겠소" 라고 말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우산없는 집엔 다른 준비가 있답니다.. 더보기
1910년 한일병합 사기 문건 2009-07-06 10:35:30 병합조약' 韓日 필적 동일…"무효 증거" 서울대 이상찬교수, 필체·제본·봉인 비교 "한국측 문서도 日측 동일인이 제작 추정"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한일병합 조약'이 최소한의 외교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학계의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상찬 교수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 문서의 물리적·외형적 특징을 비교한 결과 한국측 문서와 일본측 문서가 동일한 인물에 의해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자신의 연구결과와 관련자료를 공개했다. 이 교수는 양국 병합조약이 동일인물에 의해 제작됐다는 근거로 필체(筆體), 지질(紙質), 색깔과 제본(製本), 봉인(封印) 방식 등이 같다는 점을 꼽았다. 이는 정상적인 여건에서 체결된 조약.. 더보기
노무현 전대통령 유서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