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보들레르
샤를 보들레르 [ Charles Baudelaire ]
1867. 8. 31 샤를 보들레르 사망
프랑스의 시인ㆍ미술평론가. 낭만파 최후의 시인이며, 악마파(惡魔派: Diabolism)ㆍ신비파(神秘派)의 선구자.
문관이며 화가인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839년 루이 루그랑교를 졸업한 뒤, 어머니와 의부의 만류를 무릅쓰면서, 문학을 지망했다.
1841년 부모의 뜻으로 인도에 가게 되었으나 도착하기 전 되돌아 왔다.
그러나 그 해양의 체험은 뒤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34년 7만 5천프랑의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젊은 시인들과 교우하고,
흑인 혼혈 여성과 연애를 하는 등 방탕하게 지내 유산의 태반을 탕진했다.
1845년 살롱 비평으로서 문학 생활을 시작, 환상적인 산문과 시를 잡지에 투고하는 한편
미술 비평에도 손대어(1846) 근대 미술비평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
1848년의 혁명 중에는 동지들과 함께 《공익(公益) La Salut Public》을 발행하며 일시 혁명에 참여 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고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 아편까지 복용하였다.
1857년 그의 최대의 걸작인 《악(惡)의 꽃 Les Fleurs du Mal》을 냈으나 오히려 미풍 양속을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1860년경부터는 병적인 발작과 채귀(債鬼)에 몰려서 창작력도 말라 들고 말았다.
악으로부터 미를 찾아낸다고 하는 이 시인의 태도는 당시로서는 이해되기 어려워
위고 같은 사람만이 "새로운 전율(戰慄)을 창조했다" 고 평했으나 그 뒤 그는 상징주의를 비롯한 현대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발레리는 《악의 꽃》이 없었던들 상징주의가 없었을 것이라고 찬탄 하였다. 베를렌ㆍ랭보ㆍ말라르메는 그의 계승자들이다.
1857 악의 꽃(惡-, Les Fleurs du Mal)
De Spleen de Paris
Mon Coeur mis a 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