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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청백리(淸白吏) 유관(柳寬) 알기

청백리(淸白吏) 하정(夏亭) 유관(柳寬)

출생-사망 :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1433년(조선 세종 15년)

 호   : 하정(夏亭),

본관 : 문화(文化)

직책 : 사헌부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을 지냄

청렴성

  - 종로구 창신동 골목 안에 살았으며 늘 간편한 사모(紗帽)에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다니기만 하고 수레나 말을 타고 다니는 일이 없었음.

  - 나라에서 받은 녹은 다리를 놓거나 길을 넓히는 일과 동네 어린이들의

     먹과 붓 값으로 썼으며 자신은 논밭이나 별장 하나 없이 청빈한 삶을 지냄

 

【청렴일화】


 장마때 천장에서 비가 줄줄새자, 우산으로 비를 막으며 부인에게 "이 우산도 없는 집에선 어찌 견디겠소" 라고 말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우산없는 집엔 다른 준비가 있답니다" 라고 쏘아 붙이자 유관이 껄껄 웃었다고 함

 유관의 일생

  ○ 1394년(태조3년) : 태조가 수도를 계룡산으로 천도하려 할 때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도록 설득

    - “도읍지라 함은 첫째, 땅이 넓고 편평해야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있고,

       둘째는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거리가 어디든지 비슷한 나라의 중심이어야 백성들이 나라의 혜택을

       고루 입을 수 있다”

  ○ 1410년(태종10년) : 예문과 대제학으로 “태조실록” 편찬에 참여

  ○ 1414년(태종14년) : 사헌부 대사헌

  ○ 1424년(세종 6년) : 의정부 우의정, 고려사 편찬

   - 여러차례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려나려 하였으나, 세종대왕이 그의

      학문과 인품을 아껴 허락하지 않음

  ○ 1433년(세종 15년) : 임종

   - 세종대왕은 유관이 임종하자 친히 문무 백관을 거느리고 흥인문에 나가 제사를

      지냈으며, 황희와 함께 선초 삼청(三淸)(조선초기 세 사람의 청백리란 뜻)이라

      일컬었음

 유 적

  ○ 비우당(庇雨堂)(유관의 사저) : 종로구 동숭동 낙산공원 내

   ※ 비우당 : 겨우 비를 가를 수 있는 집이라는 뜻

  ○ 유관의 묘 :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 산 157번지

 


#청백리 하정 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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