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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사건

천안함 침몰의 모든 것

천암함
                                                                                 개략적인 정보
 
함종 함번 함명 제작 운용 진수 배치 최후
 
초계함
PCC-772
천안
대한조선공사
대한민국 해군 2함대
1989년
1989년
2010년 침몰

                                                                                  일반적인 특징

배수량 전장 선폭 흘수 추진 속력 항속거리 승조원 무장 탐지 장비 
1,220 톤
88.3 m
10 m
2.9 m
2축추진, CODOG  MTU 538 TB82 디젤엔진 2기 GE LM2500 가스터빈 1기
32노트
4,000 해리(7,200 km)
104명 (함장 - 중령 최원일, 장교 10명)
76mm 함포 2문, 40mm 함포 4문, 어뢰 6발, 폭뢰, 하푼 미사일
시그날 PHS-32 함수소나

 

천안함 침몰 사건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PCC-772 천안이 원인 미상의 사고 혹은 적의 무력공격으로 침몰한 사건이다.

★ 개  요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암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2010년 4월 24일 17시 현재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   한편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3월 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김현진 상사, 김정호 상사도 실신해 현재 치료 중이다. 4월 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2010년 4월 24일 현재 본 사건에 대해 정부와 군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군합동조사단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으며, 사건 발생 또는 침몰 시각과 장소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국방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지만 공식발표와 다른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21시 22분경에 사건이 발생해서 순식간에 침몰이 시작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사건발생 시각을 21시 15분으로 보는 설도 있다. 사건 발생 장소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7분, 즉 백령도 서남쪽 1마일(1.6km)해상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사고 직후에 발표하였으나, 4월 7일에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6분 해점, 백령도 남서쪽 2.5km 해상이라고 수정하여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초 좌초 지점이 공식 발표보다 2.3km 북쪽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초기에는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했으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좁혀지고 있다. 정부와 민군 합동조사단은 어뢰에 의한 피격설을 제기하고 있으며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좌초설도 제기된다.

 

★ 사고 후 구조 및 조사 과정

실종자 수색 및 천안함 인양

 
침몰된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 발견.

대한민국 해군은 27일 오전 수상함 10여 척과 해난구조함 평택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력을 사고 지점에 배치했다. 사고 지점에 배치된 100여 명의 해난구조대(SSU) 잠수 요원들은 사고 선체의 구멍을 조사하고 있다. [14] 28일에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사고 위치에 광양함을 추가로 배치했다. 수색 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침몰 지점으로부터 서남방 16마일 부근에서 구명복 상의 22개와 안전모 15개를 발견했다.

29일 밤,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인 독도함을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및 구조 활동을 지휘하기 위해 현장 해역에 긴급 투입했다.  30일,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작업 도중 실신해 후송 치료 중 사망, 순직했다.  31일 함수쪽을 수색한 잠수사의 증언에 의하면, 격실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했다.

4월 2일 수색작업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98호가 22시 30분쯤 조난신호를 보낸 뒤 실종됐다.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탑승 선원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4월 3일 천안함에서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그중 한 명은 남기훈 상사로 확인됐다. 4월 3일 실종자 가족 측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해군은 실종자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4월 7일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가 발견되었다.

4월 15일 천안함의 함미가 인양되었으며 여기서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이상준 하사, 이상민 병장 등 4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4월 22일 천안함을 인양하는 과정에서 박보람 하사의 시신이 연돌(굴뚝)에서 발견되었다.

4월 24일 박성균 하사의 시신이 천안함 함수 지하 2층의 자이로(Gyro)실에서 발견되었다.

- 사망자 명단

  • 상사 : 김태석(기관 조정실), 남기훈(원사, 상사 식당), 문규석(중사 휴게실)
  • 중사 : 박석원(기관부 침실), 신선준(72포 하부 탄약고), 김종헌(후타실), 민평기(승조원 화장실), 강준(기관부 침실), 최정환(승조원 화장실), 정종율(기관부 침실), 안경환(기관부 침실), 김경수(승조원 화장실)
  • 중사(진) : 임재엽(72포 하부 탄약고)
  • 하사 : 방일민(승조원 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서대호(승조원 식당-기 관부 침실 통로), 이상준(승조원 식당), 차균석(유도 행정실), 서승원(디젤 기관실), 조진영(기관부 침실), 손수민(승조원 화장실), 문영욱(제독소), 심영빈(승조원 화장실), 조정규(기관 창고), 김동진(후타실), 박보람(배 밖 연돌), 박성균(자이로실)
  • 병장 : 이상민(1988년생, 승조원 식당), 강현구(기관부 침실), 이용상(후타실), 이상희(기관부 침실), 이상민(1989년생, 기관부 침실), 이재민(기관부 침실)
  • 상병 : 안동엽(기관부 침실), 박정훈(기관부 침실), 김선명(기관부 침실), 김선호(후타실), 정범구(전기 창고)
  • 일병 : 조지훈(승조원 화장실), 나현민(기관부 침실)
  • 이병 : 장철희(기관부 침실)

 

- 생존자 명단

 사건 일지

★ 영결식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이 날 영결식에는 2800여 명이 참석해 천안함 장병들을 애도했다.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인근의 원정초등학교는 영결식이 열린 4월 29일 오전 10시를 기해 전교생이 묵념을 올렸다. 원정초등학교에는 천안함 희생 장병의 일부 자녀들도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결식은 국기경례 → 묵념 → 경위보고 → 화랑무공훈장 추서 → 조사 → 추도사 → 종교 의식 → 주요 인사 헌화 → 조총 발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희생 장병 46명(산화자 6명은 유품)은 국립대전현충원의 사병3묘역에 안장되었다. 또한 천안함 실종자들을 구조하려다 희생된 故한주호 준위도 묘역 인근에 안장되어 있다.

 실종자(전사자)가족협의회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2010년 3월 30일에 전체회의를 통해 46명의 천안함 실종 장병 가족당 1명씩의 대표를 뽑아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약칭 천실협)를 구성하였으며, 이 가운데 15 ~ 20명으로 실무단을 구성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발족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전원의 구조를 위해 마지막 1인까지 최선을 다할 것 △현재까지 진행된 해군과 해경의 초동대처 과정과 구조작업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할 것 △가족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할 것 등을 해군에 요구했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는 고 최정환 중사의 매형 이정국 씨가 맡아 활동해 왔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장교는 7명(중령1, 소령1, 대위2, 중위3) 전원 구조된 것에 대해 지휘책임 회피문제를 제기했으나 함장 최원일 중령은 선체의 구조상 장교들이 머무는 작전상황실이 선두에 위치했고 선미만 가라앉은 사고였기 때문에 장교들은 모두 무사한 것이며 자신도 초계함이 침몰할 당시 약 5분 동안 함장실에 갇혀 있어서 부하들이 함장실 문을 부수고 나서야 함장실 밖으로 나왔는데 이때는 이미 선미부분이 침몰하고 난 이후였다고 진술했다. 사실 이 순간의 상황은 최원일 중령이 작전상황도를 검토하고 있던 도중 사고가 발생하여 최원일 함장이 함장실에 갇혀 있게 된 것을 부함장 김덕원 소령이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문을 부수고 최원일 중령을 구조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당시 초계함의 모든 전력이 차단되어 정전상태였기 때문에 함장인 최원일 중령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사고상황을 상부에 보고했다.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2010년 4월 21일에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족 전체회의를 통해 직계 가족으로 이뤄진 새 가족대표단 '천안함 전사자 협의회'(약칭 천전협)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새로 조직된 천전협은 천안함 희생·실종자 가족당 직계가족 1명씩이 대표로 참여해 모두 46명으로 구성됐으며, 아직 실무단을 따로 뽑지는 않았다. 천전협과 함께 5인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가 구성되어서 군과 장례절차를 협의할 예정이다.

★ 침몰 원인

침몰 원인에는 크게 북한공격설과 사고설이 있다. 북한공격설은 어뢰설, 매설기뢰설, 대함화기공격설을 말하고, 사고설에는 유실기뢰사고설과 좌초설, 선내폭발설, 자체결함에 의한 피로파괴설 등으로 나뉜다. 기뢰에 의한 사고의 경우, 한국전쟁이나 훈련중 "유실된 기뢰"라는 사고설과 북한이 고의적으로 "매설한 기뢰"라고 보아 북한공격설로 볼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뉜다. 한편 위에서 나열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가설 중 외부충격에 의한 가설은 북한공격설 모두와 사고설 중 유실기뢰사고설, 좌초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내부충격에 의한 것은 선내폭발설이 유일하며, 피로파괴설은 외부나 내부에 의한 충격, 그 어느 것도 아닌 경우이다. 일부에서는 좌초와 피로파괴가 순차적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0년 4월 15일 천안함 함미를 예인하여 조사하게 됨으로써 침몰 원인이 조금씩 밝혀졌다. 비록 잠정적이긴 하지만 민군 합동조사단 참가자중 일부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부충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4월 25일 합동조사단은 외부충격에 의한 폭발로 비접촉식 수중 폭발로 인한 침몰이라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북한공격설, 그 중에서도 수중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침몰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영삼도 북한 공격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 북한이 공격을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한편 북한 어뢰에 의한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주장에 대해 북한은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북한어뢰 공격설

북한의 어뢰공격설은 북한잠수정에 의한 어뢰공격과 인간어뢰에 의한 공격까지 포함하고 있다. 2010년 4월 2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의 사고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내부폭발과 기뢰, 좌초, 피로파괴 등은 발생했을 가능성이 낮으며 폭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뢰 가능성이 기뢰 가능성보다 높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이 어뢰가 함미를 직접 타격하는 직격어뢰인지 수중폭발로 인한 거품으로 공격하는 버블제트 어뢰인지는 더 조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4월 25일 합동조사단은 절단면과 내외부 육안검사를 볼 때 선체 절단면이 위를 향해 있는 점, 그을음과 열상 흔적이 없는 점을 들어 비접촉 폭발(버블제트)의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이어 4월 30일 사고현장에서 파편등 을 수거에 검사한 결과 RDX라는 화약성분이 검출되었고 재질은 어뢰의 외피를 구성하는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합금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근 거

  • 2010년 4월 15일 인양된 천암함의 파괴된 단면을 분석한 결과 선체 바닥 왼쪽의 철판이 안으로 휘어져 있어 외부폭발, 그중에서 어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민군 합동 조사단은 밝혔다. 각종 의혹들에 대해서는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것은 함수는 방탄유리로 쉽게 깨지지 않고, 화약냄새가 없던 것은 수중에서 폭발하여 함정 내부까지 전달되지 않을 수 있고, 떼죽음 당한 물고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공기주머니가 터져 가라앉거나 조류에 떠밀려 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침몰 당시 백령도 지진 관측소에서는 TNT 180kg에 해당하는 지진파가 감지되었고 이는 중국 중어뢰(TNT 200kg)의 폭발력과 유사하며, 생존자도 강한 충격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이 침몰되었을 당시 북한잠수정 2척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국회에서 증언하였다. 
  •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함경북도 모 기업소에서 열린 토요강연회에서 당세포 비서가 "최근 영웅적인 조선인민군이 원수들에게 통쾌한 보복을 안겨 우리 자위적 군사력에 대해 남조선이 국가적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한 것을 전했다.
  • 천안함 연돌에서 어뢰 탄약으로 추정되는 화약성분이 발견되었고 침몰 지점에서 수거된 알루미늄 조각에서도 동일성분이 발견되었다. 어뢰등에 사용되는 이 알루미늄 파편은 정밀 조사한 결과 한국 무기에는 없는 재질로 확인됐다[

 - 반  론

  • 인양된 함수의 유리창이 깨지지도 않고 흠집도 거의 없어 어뢰 또는 기뢰에 의한 폭발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일반적인 어뢰 공격시 발견되는 물고기 떼죽음, 화약냄새, 열기가 감지되지 않았다.

 - 파급효과

  • 사망한 장병들은 전사자의 예우를 받게 되고, 유가족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상금, 국가유공자 대우 등을 받게 된다.
  • 북한의 공격이라는 증거가 발견될 경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결의를 요청할 수 있다.

 - 비슷한 주장

  • 북한기뢰공격설: 북한이 (반)잠수정 등을 이용해 백령도 근해로 침투하여 사전에 기뢰를 매설해 두었는데, 천안함이 이를 모르고 지나가다 기뢰가 작동해서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이다.
  • 대함화기공격설: 북한이 기뢰나 어뢰가 아닌 대함화기로 직접 공격했다는 주장이다. 4월 23일 류우익 주중 한국대사는 북한이 직접 공격해서 천안함이 침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장엽 역시 천안함은 북한이 공격해서 침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북한 고위장교가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이 천안함을 침몰시키도록 지시했으며 김정은은 천안함이 침몰하자 작전 성공에 대해 크게 기뻐했다고 증언했다는 보도가 있다.

 기뢰사고설

한민국 영토인 백령도 근해에 기존에 매설되었으나 미처 제거하지 않은 기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주장이다. 기뢰사고설로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 동해와 서해에 설치한 기뢰가 다 제거되지 않은 채로 바다 밑에 남아 있다가 강한 물살에 남쪽으로 흘러내려와 천안함에 부딪혀 폭발했다는 설과, 1970대 한국 해군이 전시를 대비해 설치한 것을 천안함이 실수로 건드렸다는 설이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북한군 기뢰에 관하여 "비록 많은 기뢰를 제거했다고 하지만 물속에 있는 기뢰를 100% 수거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기뢰가 바다로 흘러내려 왔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힌 반면, 서해안에 설치된 한국군 기뢰는 현재 다 제거되었다며 한국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사고였을 가능성을 일축하였다. 또한 염분이 강한 바닷물에서 30년이 지난 기뢰가 폭발할 가능성도 적으며 사고수역은 많은 어선들이 다니던 곳인데 갑자기 떠올라 폭발할 가능성도 낮다.

 좌 초 설

사고 근해에 있는 암초 또는 바다 바닥에 천암함이 부딪혀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인양된 함미에서 확인되는 긁힌 자국[68]과 해군 제2함대 사령부의 브리핑 자료, 해경에 구조요청 시 신고 내용, 백령도 주민들의 증언 등이다.

 - 근  거

  • 함미의 우측은 깨끗한 데 반해 함미의 좌측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사고 다음날인 3월 27일에 기자들에게 브리핑할 때 사용한 작전상황도에 등장하는 "좌초"라는 문구와 사고 시점의 수심을 4m로 적어 둔 것이 노출되었다.
  • 해경이 해군으로부터 "천안함, 밤 9시 30분쯤 좌초되었다"는 구조 요청을 받았다고 보도되었다. 
  • 백령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 지점 인근에 있는 암초에 천안함이 좌초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사고 지점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수중 암초가 있는데, 주민들에 의하면 이 암초가 "밀물 때는 잠겨 있어, 알아서 피해 다닌다"고 한다.
  • 천안함 기관병으로 근무했던 박모씨는 연합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썰물 때 천안함의 스크루가 암초에 걸려 배의 함미가 위로 뛰어 오르면서 받은 충격에 그 충격음이 배 안에서 폭발음처럼 들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스크류가 회전 방향으로 찌그러진 점, 함미 인양시에 선체에서 물이 샌 점 등을 들어 좌초설을 주장했다.

  - 반  론

  • 4월 25일 함수를 예인하여 조사한 결과 배의 밑이 온전한 것이 확인되었다.
  • 백령도 지진관측소에서 확인된 지진파를 설명할 수 없다.
  • 백령도에서 조업을 하고 있는 어민에 따르면 "사고 해역에는 암초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고 해역은 어민들이 평소 다니는 항로인데 암초는 발견되지 않았다" 고 증언했다.
  • 현장에서 어뢰에 사용하는 알루미늄 파편과 화약성분이 발견되었다

  - 파급효과

  • 사망한 장병들은 전사가 아닌 순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보상금이 약 1억여원 정도 줄어들게 된다. 

★ 선내폭발설

선내폭발설은 천안함 선내에 있는 함포탄과 어뢰가 노후화로 인하여 폭발했을 것이라고 보는 설과, 함 내부에서 불만이 있던 자가 일부러 폭발 사고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탄약고에 있는 무기들이 분리 보관되어 왔다는 점, 침몰 당시 화약냄새가 전혀 없었다는 점, 폭발로 인한 부유물이 주변에 없었다는 점, 그리고 평상시 사고를 칠 만한 사병들 또한 딱히 없었다는 점 때문에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천안함이 인양된 이후 확인한 결과 내부의 폭발물은 안전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 피로파괴설

‘피로파괴’란 미세한 균열이 장시간 누적된 충격과 압력에 의해 갑작스런 파괴로 이어지는 현상인데, 이번 천안함 침몰이 피로파괴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피로파괴가 침몰 원인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여러 증언과 어뢰, 기뢰 등의 폭발 가능성이나 좌초 가능성이 낮을 경우 가장 높은 개연성이 있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사고 직후 일부 실종자 가족들이 선내에 물이 샌다는 말을 실종자들에게 들었다는 증언이 나옴에 따라, 수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작전 수행에 나섰기 때문에 배가 침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한편, 4월 23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인 박선원 박사는 손석희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한국이 공개하지 않은 자료는 미국이 다 갖고 있다"며, "우리는 선체의 결함 이외에 다른 침몰의 요인을 알지 못한다"며 선내결함설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천안함의 절단면은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지 않고 찢겨 있는 상태여서 피로파괴설은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절단면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한편,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은 실종자 가족들이 제기한 선체결함 의혹에 대해서 “수리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물이 샌 적도 없다”고 말했으며, 생존 장병들과의 기자 회견에서도 "물이 샌다고 말하는 건 온도차로 습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두고 오해하는 것이다."라며 부인했다. 최초 폭발 당시 백령도 지진관측소에서 관측한 지진파가 피로파괴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좌초 후 피로 파괴설

좌초된 후 침수 등에 의해 피로파괴가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피로파괴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 중 하나인 절단면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아메리칸 스타호의 사례에서처럼 좌초 후 피로파괴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절단면이 매끄럽지 않고 찢긴 모양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87][88] 그러나 천안함이 예인된 이후 조사한 결과 배의 밑이 온전한 것이 확인돼 이 가설도 신빙성이 낮아졌다

★ 정부 및 군당국의 정보 은폐 논란

이명박 대통령이 4월 1일 한나라당 의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 국민에게 밝히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의 일관성없는 언론 플레이·진술 번복·정보 은폐로 인해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방부의 진술 번복

국방부는 사고 원인이나, 사고 시각 등에서 진술을 수차례 번복하였다. 국방부 장관은 어뢰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어뢰는 사전에 소리가 탐지되는데 탐지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기뢰는 다 제거되었다"고 주장하던 과거와는 달리 4월 12일에는 "아군 기뢰 전량 제거된 것 아니다."라며 진술을 또 번복하였다. 국방부는 계속 최초 보고는 "휴대전화"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폭발 전에는 전혀 징후를 몰랐고, 폭발 후에는 전기가 나가서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에서 군함에 휴대무전기도 없느냐고 질타하자, 그 이후 언론보도에서는, 최초 보고는 휴대전화로 했는데, 나중에는 휴대무전기로 보고했다고 하면서 진술을 번복했다.

국방부의 거짓말

국방부는 사고 당시 "실종자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실종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하였으나, 실제로는 언론에 4시간 먼저 명단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 정보 은폐 의혹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천안함에 승선해 있던 한 장병이 가족과 휴대전화 통화를 하다 오후 9시16분쯤 갑자기 "지금은 긴급 상황이라 통화가 어렵다.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천안함과 제2함대 사령부 간의 교신 기록 중에 사고 직전인 9시 15분부터 22분까지 7분 분량의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서 의혹을 더하고 있다. 군 당국은 그동안 사고 발생 장면을 찍은 화면은 없다고 밝혀왔으나, 이 동영상이 존재하며, 민군 합동조사단이 봤다는 증언이 보도되었다. 생존 장병들은 전원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외부인과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이다. 국방부는 유언비어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선체 인양시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을 그물로 은폐하고, 언론의 300야드 이내 접근을 차단한 채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인양 작업에 참여한 민간업체 관계자들에게 보안서약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한 백령도 주민들에 대해 기무사와 경찰에서 추궁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0년 5월 3일 민간조사단으로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신상철은 "침몰사고의 원인이 무엇이든 지휘통제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조사를 전담하고 나서는 것은 문제가 많다", "국방부 발표를 보면 북한 소행으로 단정지어 놓은 상태에서 보복이니 응징이니 하면서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이런 조사를 믿을 수가 있나.", "비밀유지 각서를 썼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다만 어뢰나 기뢰에 의한 공격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며 정부의 은폐, 조작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천안함의 사고 당시 모습이 담긴 TOD 영상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숨겼다는 복수의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거짓과 의혹이 나오는 상황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의 수사가“신뢰가 안 간다”는 응답이 59.9%에 이르렀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34.9%에 그쳤다.

 금양98호 침몰 사건

저인망어선 금양98호는 4월 2일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침몰 원인은 천안함 침몰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며 캄보디아 선적 화물선 '타이요호(1천472t급)'와의 충돌 때문이다. 충돌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는 타이요호는 사고 당시 조타실을 비워둔 채 운항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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