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 취임사에 담긴 비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2년 7월 2일 서울시장 취임사에서 "청계천 복원은 개발의 시대가 가고 역사, 문화, 환경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대역사로 서울의 얼굴을 바꿀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얼굴을 바꾸는 사업"이라며 "광통교, 수표교 등 청계천의 옛 다리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함께 본래의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또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일자리 10만 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공언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청계천의 모든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22조 원짜리 4대강 사업에서 34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했던 이 대통령. 그런데 총사업비 3649억 원이 소요된 청계천에서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요? 따져볼 필요도 없는 사기극이지요. 서울시장 취임사부터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했습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거짓이야 넘어간다고 칩시다. 문제는 "광통교, 수표교 등 청계천의 옛 다리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함께 본래의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취임사입니다.
'한양도성도'와 '동국여지비고' 등의 고지도에 따르면 청계천에는 송기교, 모전교, 광통교, 광제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 마전교, 오간수문, 영도교 등 총 11개의 다리가 있었습니다. 이중 18세기 이전에 사라진 광제교를 제외한 나머지 다리는 변동이 없습니다.
그리고 1900년경에 송기교와 모전교 사이에 신교(新橋)가 새로 설치되었고, 1918년 수표교와 하랑교 사이에 관수교(觀水橋), 1920년대 초에 청계4가에 주교(舟橋)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건설 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관철교(貫鐵橋)와 방산교(芳山橋)가 1950년대 말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까지 존재하였습니다. 청계천엔 총 15개의 다리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모토는 "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성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청계천의 옛 다리들을 "본래의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겠다고 공언한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15개의 다리 중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약속한 대로 복원된 다리는 몇 개나 될까요? 놀랍게도 단 하나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수표교를 '바른 자리' '바른 모습'의 청계천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본래의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던 청계천 수표교에 다녀왔습니다. 거무튀튀한 4개의 쇠기둥 위에 나무를 깎아 만든 다리가 '수표교'라는 명찰을 달고 서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그 유명한 수표교란 말입니까? 세종2년 1420년에 청계천에 세워진 대표적 다리가 맞습니까? 그래서 600년의 세월을 견디느라 다리 난간마다 다 갈라지고 터진 것일까요?
한미FTA 강행의 근거로 제시하며, 이 대통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청계천에는 나무를 깎아 수표교의 모양만 낸 가짜 다리만 있을 뿐, 600백 년 역사의 숨결이 깃든 수표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은 사기였습니다.
매서운 겨울바람 맞으며 진짜 수표교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본래의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겠다고 약속한 2002년 7월로부터 벌써 9년 6개월이 지났건만, 수표교는 아직도 남산으로 오르는 장충단공원 한구석에 처박혀 있습니다.
이리저리 오가며 수표교를 살펴보았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습니다. 그저 놀랍고 아름답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오랜 역사의 흔적이 담긴 옛 다리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이렇게 멋진 다리는 처음 만난 듯했습니다.
세종 2년 처음 건설된 수표교에는 난간이 없었으나, 1890년경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새롭게 난간을 설치했습니다. 수표교는 두 시대의 만남인 셈이지요. 수표교가 청계천을 떠나 장충단 공원으로 이사 온 이유는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문입니다. 광통교를 비롯해 청계천의 다리와 유물들을 그대로 덮는 복개공사를 하면서, 유독 수표교만은 훼손하지 않고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청계천의 여러 다리 중 수표교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뛰어난 다리라는 걸 당시 사람들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표교가 바른 자리에 바른 모습으로 복원되었다면, 청계천은 지금처럼 세계 최대의 '누워있는 분수'라는 오명을 쓰진 않았을 것입니다. 콘크리트 어항에 썩은 물만 흐를 뿐, 청계천 그 어디서도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하천이라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 흔한 정자도 하나 없습니다. 죽은 다슬기를 닮은 국적 불명의 소라탑을 세우면서 역사·문화는 깡그리 무시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청계천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이 꼭 찾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계천의 시작점에서 기념사진만 찍곤 바로 자리를 뜹니다. 바빠서냐고요? 아니지요. 청계천엔 더 이상 볼 게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토록 멋진 수표교가 있었다면 청계천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곳이 되었을까요? 또 얼마나 더 많은 외국인이 이곳을 찾아와 우리 조상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며 감탄했을까요?
청계천 고가도로 밑에 숨어있던 보물창고, 누가 파괴했나
청계천의 심각한 문제는 수표교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청계천에 가득했던 역사·문화를 깡그리 파괴했다는 사실입니다.
청계천은 그 자체로 조선의 역사와 숨결이 담겨있는 유물이었습니다. 청계고가도로 밑 콘크리트로 뒤덮인 청계천에는 40여 년간 어둠에 감춰져 있던 문화재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유명한 오간수문의 교각과 홍예석, 기초바닥석을 비롯하여 15개 다리의 다양한 흔적들과 석축들이 역사를 간직한 채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복개되었던 청계천의 콘크리트를 걷어냈을 때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썩은 물만 흐르는 시궁창으로만 여기던 청계천에 엄청난 역사의 보물들이 그대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다시 돌아올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인 청계천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의 기대와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자신의 임기 안에 완공하기 위해 모두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청계천 복원에 관한 서울시의 서류들을 찾아냈습니다. '청계천 유적주변 건축물 관리계획'(2005.5)에 따르면 수표교는 원형 그대로 복원을 추진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수표교의 이전 복원을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까지 있습니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서울시의 또 다른 서류인 '청계천 복원공사 추진 현황'(2004.6)을 살펴보았습니다. '지표조사'와 '시굴조사' 그리고 2003년 12월 11일~2004년 6월 10일까지 '발굴조사' 기간이 나와 있습니다. 특히 보고서 하단에 '추진현황-현장조사완료'라며 광교교·수표교·양안석축·하랑교·효경교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아랫줄에 '보존장소: 광교·양안석축(역사박물관후정)·수표교·하랑교·효경교·오간수문(중랑하수사업소)'이라는 아주 특별한 문구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자랑하는 청계천의 모든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서울시가 언급한 중랑하수사업소란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을 말합니다. 청계천에서 나온 수백 년 된 역사 유물들이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아주 멋지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서울시장 임기가 끝난 지가 벌써 몇 년이고, 심지어 대통령 임기도 이제 일 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 청계천의 역사유물들이 아직도 하수종말처리장 마당에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빗줄기를 맞아가며 잡초들과 함께 뒹굴고 있습니다.
이명박식 문화재 복원은 '자연과 함께!'라는 참 특이하고 놀라운 기술입니다. 청계천 유물을 왜 하수종말처리장에 처박아 놓았을까요? 설마 하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하천에서 나온 것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이게 바로 이 대통령이 외친 '바른 자리' '바른 모습'의 진실입니다.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을 언제 '바른자리'에 '바른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일까요? 4대강 사업은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밤낮없이 강행하더니, 자신이 약속한 청계천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역사 파괴'라는 청계천의 진실을 국민이 모르니, 심심하면 한미FTA와 4대강 사업의 합리화로 청계천을 둘러대고 있습니다. 청계천이 대국민 사기이듯, 경제주권을 포기한 한미FTA와 4대강 사업도 국민을 속이는 날림과 부실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본래의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청계천 옛 다리들을 복원하겠다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약속은 사기극으로 끝났습니다. 그래도 다리 15개 중에 광통교는 복원했다고요? 아닙니다. 광통교는 본래의 자리에서 상류 150m 위로 이전 복원됐습니다. '본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고 박경리 선생님이 통탄했던 이유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공사를 지켜보던 박경리 선생님은 2004년 3월 8일자 <동아일보>에 '청계천, 복원 아닌 개발이었나!'라는 특별기고를 통해 탄식했습니다.
"청계천 복원에 다소나마 관여한 만큼 나는 민망하고 부끄럽다. 시냇물에 분수가 가당키나 한가. 설계를 보아하니 청계천이 잡탕이 될까 두렵다. 단적으로 말해서 조경 때문에 복원이 희생되고 있는 것 같다. 복원한다는 풍선은 띄워놓고 수표교 복원은 유야무야, 그러니까 복원은 안 하겠다는 속셈이다.(중략) 결국 청계천은 30여년 전에 첫 개발에 의해 매장되었고, 이번에 개발에 의해 모든 유적은 '파괴'되고 '유실'될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의 형편을 바라보면서 미력이나마 보태게 된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 차라리 그냥 두었더라면 훗날 슬기로운 인물이 나타나 청계천을 명실공히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청와대에서 만든 4대강 사업 홍보책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복원했다는 청계천 사진과 함께 청계천 복원을 소망하는 박경리 선생님의 2003년 5월 7일자 <동아일보> 기고문이 실려 있습니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이명박식 청계천 복원이 통탄스럽다는 진실은 쏙 감추고, 박경리 선생님의 유명세만 이용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치졸함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청계천 제대로 복원할 기회가 왔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은 <동아일보> 기고문 마지막 줄에 "훗날 슬기로운 인물이 나타나 청계천을 명실공히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라고 아쉬워했습니다. 맞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이 파괴한 청계천을 제대로 복원할 길이 조만간 열릴 것 같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계천을 제대로 복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기극을 총정리해 제가 쓴 책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북 콘서트가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시청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박원순 시장도 참석했습니다. 현장에서 저는 박 시장에게 청계천의 감춰진 역사 파괴의 진실을 보여 드렸습니다.
사진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박 시장의 얼굴은 놀람과 충격으로 일그러졌습니다. 그의 입에선 안타까움 가득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개발방식은 잘못됐다"며 "청계천의 올바른 역사 및 생태복원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고 현장에서 공개적으로 약속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한강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긴 했지만, 청계천 복원까지 언급하자 화들짝 놀란 것은 보수언론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자랑인 청계천에 박 시장이 정면도전을 선언했다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아닙니다. 박원순 시장의 청계천 복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맞서기 위함이 아닙니다. 청계천의 옛 다리들을 '바른 자리'에 '바른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약속을 대신 지키는 것뿐입니다.
청계천을 사랑하는 여러분, 아름다운 수표교를 언제까지 장충단공원에 두어야 할까요? 수표교가 청계천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 그날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기극이 만천하에 들통 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날을 위해 박원순 시장님의 주저없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2012년은 청계천의 역사·문화·생태를 바로 세우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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