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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소요지맥(회암사지-천보산-해룡산-왕방산-국사봉-깊이울) 종주산행 1

천보산-해룡산-왕방산-국사봉 종주산행

 종 주 일

   ▷ 2009. 6. 7(일)

 

♡ 산행코스 및 시간

   ▷ 덕정회암사지-회암사-천보산-해룡산-오지재고개-왕방산-깊이울고개-

       통재비고개-국사봉(심곡산)-심곡저수지-깊이울유원지 입구

   ▷ 산행거리 약 20km

   ▷ 산행시간 약 6시간 10분(휴식시간 포함)

 

♡ 함께한 사람(2명)

   ▷ 사패산과 산호수

 

♡ 교 통 편

   ▷ 갈 때 : 승용차(집-회룡역-양주시청-덕정역-회암사지)

   ▷ 올 때 : 버스(깊이울 유원지 입구-포천시내-의정부역), 택시(의정부역-회룡역) 

 

♡ 준 비 물

   ▷ 사패산 : 물 2ℓ, 막걸리 1병, 얼린맥주 1ℓ, 과일, 김치약간

   ▷ 산호수 : 물 2ℓ, 막걸리 1병, 밥 2인분, 과일, 반찬약간

 

♡ 종주진행

   → 회암사지 --- 08:10

   → 절골

   → 회암사

   → 천보산 정상

   → 해룡산 갈림길

   → 해룡산 입구

   → 해룡산(군부대)

   → 헬기장(막걸리 간식)

   → 오지재 고개

   → 왕방산 입구

   → 570봉

   → 왕방산 정상(점심) --- 11:10

   → 깊이울 고개

   → 통재비 고개

   → 국사봉 정상(군부대 헬기장-맥주와 간식) --- 12:30

   → 깊이울 계곡(족욕, 등목)  

   → 심곡저수지 --- 14:00

   → 깊이울 유원지 입구 --- 14:20                  

 

♡ 산행지도

산행지도 - 천보산에서 구사봉까지


♡ 종주후기

3년전 여름이었을까?? 무럭고개에서 왕방산을 거쳐 국사봉으로 산행하였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국사봉에서 길을 잘못 들어 봉고 얻어 타고 택시타고 하여 무럭고개까지 왔었다. 그때 해룡산-천보산 종주코스와 소요산까지 가는 종주를 한번은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는데 이번에 기회인가 보다. 

 

그런데 사패산이 이번주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천보산을 거쳐 왕방산까지 산행을 하자고 한다. 나는 한술더 떠서 기왕이면 국사봉까지 가자고 하여 시간을 보아 그리하기로 약속을 한다. 난 낚시 약속이 있어서 토요 산행이 아닌 일요일 산행하기로 하고 금요일 근무 끝나자 마자 밤낚시 준비를 위하여 집으로 고고씽--- 마늘은 교회 할머니들 봉사로 1박2일 동해안 갔다 와서 피곤하다고 한다. 피곤하면 쉬자고 하였더니 약속한 것이니 낚시를 가자고 하여 고맙기만 하고. 준비하고 출발하니 벌써 오후 7시 30분이다. 서울을 빠져 나갈 때 좀 정체가 되고 금당천에 도착하니 그래서 어둠이 짙어진 밤 9시가 되어 간다. 정행과 정행친구는 잔챙이만 나온다고 투덜거리고 그렇게 밤낚시를 하고(조과-잔챙이 붕어 6수) 토요일 오전에 미나리를 잔뜩 채취하여 다시 집으로---

 

일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산행 들머리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여 고맙고, 회룡역까지 가서 7시 30분 사패산과 만나 회암사 입구에 도착하니 8시다. 마늘한테 회암사까지 등산을 하자고 하였더니 피곤하다고 하여 회암사터만 보고 우리는 산행을 시작하고 마눌 집으로 향한다.

 

회암사지 전망대에서 승용차 운전해준 아내와 함께

 

 

회암사지(檜巖寺址) --- 윗부분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그러나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 이색이 지은『천보산회암사수조기』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

회암사지(檜巖寺址) --- 아랫부분

산행시작 하면서부터 급경사길을 사패산은 빡세게 앞으로 나아간다. 회룡사에 도착하였을때는 벌써 온몸이 땀으로 적셔 있다. 회암사 위 무학대사 부도와 나옹선사 그리고 지공스님 부도를 잠깐 바라보고 사진한장 찍고 정상을 향하여 다시 오르기 시작이다.

천보산 등산 안내도--- 산이 작아서일까 왠지 초라해 보입니다.

 

현재의 회암사 대웅전
회암사지 쌍사자 석등과 무학대사 홍융탑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과 비
지공스님 부도와 석등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부도와 석등앞에서
천보산 정상입니다---아름다운 소나무가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 줍니다.
천보산 정상 오르는길목에서 --- 저 아래에 회암사가 보인다
뒷편으로 칠봉산이 이어집니다---우리는 오늘 해룡산으로 갈 예정입니다.
천보산 정상의 조그마한 표지판 ---

천산의유래는 조선조 어느왕이 난을 당하여 잠시 이곳으로 피신을 한 후 목숨을 건진 것을 생각하여 금은보화로 치장(値裝)을 하여도 아깝지 않은 산으로 여겨 하늘 아래의 보배(寶杯)로운 산이라고 이름을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천보산 제5보루 --- 고구려와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루었던 곳이 아닐까???
해룡산으로의 갈림길
산악자전거(MTB)도로를 동두천에서 잘 조성하여 놓았네요

해룡산 정상으로 가는 임도 및 군사도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 때로는 MTB용 도로로도 활용하는듯-

 

MTB 구간을 지나고 천보산에서 뚝떨어진 고도를 다시올라 해룡산 정상부근에 오니 군부대가 정상부근은 모두 차지하고 오른쪽 방향으로 등산로가 이어지고 있다. 발마욱 소리를 들었는지 노랑털이 박힌 하얀 진돗개(?) 한마리가 자기가 보초라도 서는듯이 보이지 않을 곳에서부터 크게 짖는다. 우리가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군인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개한마리가 군인들 수명의 몫은 하는것 같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을은 점차 굵어지고 군부대를 지나 헬기장에서 우린 나무 밑에서 휴식을 할까 하다가 그냥 헬기장에 주저 앉아 비를 맞으면서 준비해온 냉 막걸리와 황도를 안주삼아 요기를 하고 해룡산 정상 부근을 떠난다 저 건너에는 우리가 가야할 왕방산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오지재고개의 왕방산 안내도
왕방방 등산로 입구에서(오지재 고개)
오지재고개는 공원으로 잘 관리하고 있네요.  오지재의 유래를 알려고 하였으나 찾을길이 없다.
왕방산 정상 부근에 설치된 이정표
왕방산 정상에서
왕방산 정상 표지석

왕방산의유래 --- 포천시의 진산으로 불려온 왕방산(737m)은 포천읍 서쪽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다. 신라 헌 강왕 3(872)경 도선국사가 이 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 국왕이 친히 행차, 격려하였다 해서 왕방산이라 불리어졌고, 도선국사가 기거했던 절을 왕방사라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그 절터에 지금의 보덕사가 복원되었다. 왕방산은 광주산맥 서쪽의 지맥인 천보산맥의 북단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왕방산의 맑은 물이 모여 호병골계곡을 만들었다.

 

이곳 왕방산 정상의 소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식사를 하였다. 빗방울은 계속내려 산행을 하지 않으면 춥기까지 하였으나 사패산은 반팔 티셔츠 하나만 가지고와 추위를 몸으로 견뎌야만 한다. 정상에 도착하여 정상 기념사진 한장씩 찍고 먼저온 산꾼님이 소나무 비온는중에는 정상에 있는 소나무 아래가 가장 좋은 자리라고 자기들은 다 먹었다며 앉기를 권한다. 하여 우리도 산속으로 들어 갈려다가 소나무아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포천에서 막걸리 공장을 한다는 아저씨의 입담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밥과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고 바로 일어난다.(추워서 오래 앉아 있기도 어렵다) 일어나서 바로 국사봉으로 향한다,. 국사봉까지는 약 3.2km쯤 되지만 가는 도중에 아무도 만나는 사람이 없다. 아마 날씨가 흐린 탓이 아니가 싶다.  

깊이울 계곡과 새목고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이정표
국사봉 정상에서 --- 뒷쪽으로 방금 지나온 왕방산자락과 해룡산 능선이 끊어질듯 이어지고 있다.

국사봉 유래 --- 이성계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심기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함흥 본궁에 칩거하던 중, 태종 이방원이 보낸 사신들이 죽음을 당해 귀환하지 못하자  태종은 최후의 수단으로 태조와 친분이 깊은 무학대사를 보내 태조를 설득하여 당시 수도

 였던 송도로 귀환하게 된다. 이 때 태종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여행길에 이 산에 들러 수일간

 유숙했다 하여 왕방산, 또는 왕방사라는 이름들이 생겼다는 왕방산의 유래도 있고,

 
 이 때 태조가 국수를 드셨다는 산을 국수봉이라 부른 것이 지금의 국사봉이라는 설도 있다.

 국사봉은 대동여지도에 심곡산(深谷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방산을 뒤에 두고 국사봉에 선 성만
전면에 보이는 해룡산
끊임없이 만드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구름속에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왕방산
깊이울 계곡의 맑은 물 --- 우린 이 물에서 족욕과 등목으로 땀으로 흠뻑 젖은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였다.
심곡저수지(깊이울 저수지) 상류 ---- 저수지에는 물리지 않은 붕어 낚시를 하기 위하여 많은 조사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깊이울 유원지는 오리로 워낙 유명한 곳인지라 우리도 오리로스는 좀 먹고올 생각이었으나 내려오다 보니 어느사이 깊이울 입구 도로까지 온 것이다.  차라리 포천이나 의정부에서 먹기로 하고 입구 구멍가게에서 캔맥주 4캔과 과자안주 1개로 목을 축이고 있으니 1시간에 1번씩만 온다는  버스가 2시 45분 정각에 도착하여 우리를 태우고 포천으로 향한다. 우린 포천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의정부역까지

그리고 의정부역에서 택시로 회룡역까지 가서 그곳 맥주집에 자리잡고 치킨과 생맥주로 뒷풀이를 한다.

 

빡센 산행으로 다리는 뻐근하고 몸은 피곤하지만 무사히 종주하였다는 사실과 그나마 날씨가 빗방울과 함께 시원함을 선사하여 조금은 쉽게 산행하였다는 점에서  날씨와 그리고 함께한 사패산과 차량 운전해 준 아내에게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