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前相, 後相, 心相의 인간학 >
“전상(前相)이 불여(不如) 후상(後相)이라”고 하여 사람의 앞모습 좋은
것이 뒷모습 좋은 것만 못하며 “후상이 불여 심상(心相)이라”고 하여 뒷모습이 아무리 보기 좋아도 그 사람 마음의 모습이 바르고 훌륭한 것만 못하다고 했다.
이는 최명희가 쓴 ‘혼불’에 나오는 내용이다.
최명희의 ‘혼불’은 남원의 한 종가의 삶을 재현한 작품으로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종부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인 청암부인은 불행하게도 첫날밤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그만 10대에 과부가 된다.
이른바 ‘묵신행’의 풍습에 따라 남편은 신부 집에 가 결혼식을 올리고 본가로 돌아가는데 도중에 열병으로 죽고만 것이다.
소설 ‘혼불’은 청암부인이 남편도 없는 시댁으로 오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억척같은 종부의 삶으로 스러져 가는 종가를 재건하고 천석지기 이상의 부를 축적한다.
소설에서는 청암부인의 ‘심상’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마당쇠는 제가 할 일을 이미 다해 놓은 손님이 빗자루를 세워 들고 마당 한쪽에 쑥스러운 기색으로 오두마니 서 있는 것을 그때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당쇠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곧바로 청암부인에게로 가서
“마님, 아무아무가 오늘 아침에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았습니다.”하고 고하였다.
“알았느니라” 청암부인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손님은 그 대답에 송구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었다.
그러고는 잠시 후에 부인은 광으로 가서, 자루에 쌀이나 보리 혹은 다른 곡식을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담아 내, 그가 타성 같으면 직접 가지고 가게 주었고 문중의 일가라면 마당쇠한테 가져다 드리라 시켰다.
그러니까 그 곡식이 마당 쓴 값이라고나 할까. 집안에 양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게 되면, 가난한 가장은 그렇게 빗자루 하나 들고 그 마당으로 찾아가,성심껏 쓰는 것으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였으며, 청암부인은 그 정경으로 모든 것을 짐작하고 두말없이 곡식을 내주었던 것이다.
“신새벽에 귀설은 빗자루 소리 들리면, 오늘은 또 누가 와서 마당을 쓰는고 싶더니만. 인제 후제 내가 죽더라도 그렇게 이 마당 찾는 사람을 박대하지는 말어라. 그것이 인심이고 인정이다. 이 마당에 활인(活人) 복덕(福德)이 쌓여야 훗날이 좋지, 태장(笞杖)소리 낭자하면 안택굿도 소용이 없어. 집안이 조용허지를 못한 법이다.“ 청암부인은 그렇게 아들 이기채에게 일렀다.
사람은 누구나 앞모습에 신경을 쓴다. 심지어 고약한 얼굴을 화장으로 가리기도 한다. 또 누구나 니타나는 실적을 중시한다. 보이는 것이 '착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것도 능력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참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다.
청암부인은 바로 아들 이기채에게 ‘심상’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앞모습과 함께 뒷모습을 챙기고 나아가 마음의 모습까지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사람을 얻는 길이요. 격이 있는 삶의 길일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에는 “사람은 죽어 관 뚜껑을 닫아봐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역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경구다.
전상과 후상, 나아가 심상까지 관리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 후광을 보이는 명성을 얻을 수 없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업, 나아가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앞모습도 실해야 하지만 뒷모습이 더 실한 사람, 나아가 마음의 모습이 더 실한 사람이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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