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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스크랩] 거배향천소(擧杯向天笑)---술잔을 들고 하늘을 향해 웃으니

 

我携一樽酒  獨上江祖石
自從天地開  更長幾千尺
擧杯向天笑  天回日西照
永望坐此臺  長垂嚴陵釣
寄謝山中人  可與爾同調
(아휴일준주 독상강조석
 자종천지개 갱장기천척 
 거배향천소 천회일서조
 영망좌차대 장수엄릉조
 기사산중인 가여이동조)


내 술 한통 가지고
홀로 강조석(江祖石)에 올랐네
천지가 열린 이후
바위가 몇천 자 더 늘어났네
술잔 들고 하늘 향해 웃으니
하늘은 햇살을 서쪽으로 비추는구나 
조대(釣臺)에 앉아 아득히 바라보며
엄릉(嚴陵)은 오랫동안 낚싯대 드리웠지
산중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더라면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을텐데


☞ 이백(李白), <독작청계강석상 기권소이(獨酌淸溪江石上 寄權昭夷)>

※ 근현대 중국화가 장대천(張大千)의 <고사수조도(高士垂釣圖)>

 

※ 江祖石: 안휘(安徽)성 지주(池州)시 귀지(貴池)구에 강조산(江祖山)이 있다. 이 산 서남쪽 물가 벼랑에 우뚝 솟은 바위가 강조석이다. 이백이 이곳에서 낚시질했다 하여 '이백 조대'(李白釣臺)라 부르기도 한다.

 

※ 嚴陵: 엄광(嚴光). 자(字)는 자릉(子陵). 엄자릉(嚴子陵) 또는 줄여서 엄릉(嚴陵)이라 한다. 후한의 광무제 유수(劉秀)와 어릴 적 함께 뛰놀고 공부한 사이였다.

 

광무제가 왕망(王莽)의 신(新)나라를 제압하고 제위에 오르자 부춘산으로 들어가 숨어살며 낚시로 삶을 마감했다. 그가 낚시하던 자리를 엄릉조대(嚴陵釣臺)라 부른다.

※ 청대(淸代) 화가 임백년(任伯年)의 <엄자릉조탄도(嚴子陵釣灘圖)>


※ 시선 이백에게 따라다니는 여러 별명 가운데 해상조오객(海上釣鰲客)이라는 것이 있다.

 

송(宋)나라 왕당(王讜)이 편찬한 ≪당어림(唐語林)≫에 관련 고사가 하나 전한다. 당(唐) 현종 치세인 개원(開元) 년 간에 이백이 재상을 알현하여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에 '해상조오객 이백'(海上釣鰲客  李白)이라는 서명이 붙어 있었다.

 

재상이 "선생은 창해(滄海)에 임해서 거대한 자라를 낚았다는데 낚싯줄은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先生臨滄海  釣巨鰲  以何物爲鉤線) 하고 물었다. 이백이 대답하기를 "풍랑(風浪)으로 그 욕심을 없애고, 하늘과 땅에 그 뜻을 두고, 무지개로 낚싯줄을 삼고, 밝은달로 낚시바늘을 삼았습니다"(以風浪逸其情  乾坤縱其志  以虹霓爲絲  明月爲鉤) 했다.

 

또 묻기를 "미끼는 무엇을 썼습니까"(以何物爲餌)라 하니 "천하의 의기(義氣) 없는 사내를 미끼로 썼습니다"(以天下無義丈夫爲餌) 하고 대답했다. 이에 재상이 놀랐다 한다. 이백의 범상치 않은 기상과 두둑한 배포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청대(淸代) 화가 황신(黃愼)의 <조옹(釣翁)>. 화제(畵題)로 "낚싯줄 거두고 돌아감만 못하네, 긴 낚싯대로 큰 자라 낚았으니"(不如收拾絲綸去  留得長竿釣巨鰲)이라 써놓고 있다.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경화수월鏡花水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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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낚시 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