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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희망이 가라앉았다(세월호 침몰) --- 2014.4.16. 09시 세월호 침몰하다 --- 2014.4.16. 09시 2014. 4. 16일 오전 9시경 대한민국이 흘러간 세월과 함께 바다 깊이 깊이 침몰하는 날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치욕적인 날중의 1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위정자들과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진도 해상서 477명 탄 여객선 침몰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77명이 탄 여객선이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2명이 숨지고 107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민·관·군·경이 헬기, 경비정, 민간 어선 등을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진도 침몰 여객선 구조 장면 (인천=연합뉴스) 16일 전남 진도해역에서 침수된 여객선 세월호에서 해양경찰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 16일 .. 더보기
간송(澗松) 전형필-이충열작가의 강연을 듣고 간송(澗松) 전형필-이충열작가의 강연 기억이 나지 않은 수년전에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전기를 읽은 기억이 새롭다. 이충열 선생님이 쓰신 전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쓴 책이 없다면 아마도... 2014. 4.11(금). 08:00, 수요포럼에서.............. 이충열 작가님의 열정적인 열강을 감동적으로 들었다. 이충열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그요약을 이곳에 올린다.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신’ 간송 전형필 이충렬(전기작가)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그는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고 되찾는 일이라고 생각한 선각자였다. 그런 선각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되던 옛 그림과 고려청자, 조선백자, 삼국시대 불상, 귀한 활자로 만든 책 등 .. 더보기
간송(澗松) 전형필-이충열작가의 강연을 듣고 간송(澗松) 전형필-이충열작가의 강연 기억이 나지 않은 수년전에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전기를 읽은 기억이 새롭다. 이충열 선생님이 쓰신 전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쓴 책이 없다면 아마도... 2014. 4.11(금). 08:00, 수요포럼에서.............. 이충열 작가님의 열정적인 열강을 감동적으로 들었다. 이충열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그요약을 이곳에 올린다.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신’ 간송 전형필 이충렬(전기작가)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그는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고 되찾는 일이라고 생각한 선각자였다. 그런 선각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되던 옛 그림과 고려청자, 조선백자, 삼국시대 불상, 귀한 활자로 만든 책 등 .. 더보기
볼세비키 혁명---1917년 볼세비키 혁명(1917년) 볼세비키 혁명 1917년 3월 러시아 페테르그라드에서 노동자들이 짜리즘 타도, 전쟁 반대 등의 구호를 내걸고 일어난 시위는 3월 11일(러시아력 2월 26일)에 자생적으로 혁명적인 동란으로 발전되었으며, 군대도 이에 동참하여 노동자, 병사 사이에 소비에트가 조직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혁명의 급진화를 막고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황제의 퇴위를 선언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약 3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로마노프 왕조는 망하게 되었다. 임시정부는 개혁을 약속함으로 민중의 환심을 사 전쟁을 속행하고자 한 데 비해 소비에트는 전쟁에 반대하고 무병합, 무배상 강화를 신속히 성립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소비에트 내에는 처음에는 사회혁명당, 멘세비키 세력들이 강하였으나, 4월.. 더보기
드레퓌스 사건 드레퓌스 사건(1894-1906) 드레퓌스 사건(프랑스어: L'affaire Dreyfus)은 19세기 후반의 수년 동안 프랑스를 양분했던 정치적 사건이다. 프랑스 육군의 포병대위였던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1894년 소령인 페르디낭 에스테라지라는 간첩이 쓴 문건으로 인하여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강제로 불명예 전역된 뒤,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섬으로 유배당한다. 드레퓌스는 잘못된 증거 자료에 기초를 둔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사실 드레퓌스는 무죄였다.(정보 유출에 사용된 문건에서 발견된 암호명 'D'. 이에 따라 유태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그 이름의 첫글자가 암호와 일치한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지목했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몰고간 것이다. 당시 고급.. 더보기
스탈린 스탈린 사망(1953.3.5) ○ 조셉 스탈린 사망 --- 1953. 3. 5 - 출 생 : 1879. 12. 21 - 출생지 : 러시아 그루지야 고리(현재의 그루지야) - 소속등 : 소련의 정치인 스탈린은 1922~53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1941~53년 소련 국가평의회 주석을 지냈다. 그는 4반세기 동안 소련을 독재적으로 통치하면서 세계 주요 강대국으로 변모시켰다. 스탈린은 소련을 공업화하고, 농업을 강제로 집단화했으며, 철저한 경찰 테러에 의해 그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1941~45년에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 일조했으며, 소련의 지배권을 동유럽의 여러 나라로 확대했다. 소비에트 전체주의의 최고 설계자이며 능숙하기는 하지만 가공할 정도로 무자비한 조직가였던 스탈린은 그때까지 남아 있던 개인의 자유.. 더보기
샤를 보들레르 샤를 보들레르 [ Charles Baudelaire ] 1867. 8. 31 샤를 보들레르 사망 프랑스의 시인ㆍ미술평론가. 낭만파 최후의 시인이며, 악마파(惡魔派: Diabolism)ㆍ신비파(神秘派)의 선구자. 문관이며 화가인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839년 루이 루그랑교를 졸업한 뒤, 어머니와 의부의 만류를 무릅쓰면서, 문학을 지망했다. 1841년 부모의 뜻으로 인도에 가게 되었으나 도착하기 전 되돌아 왔다. 그러나 그 해양의 체험은 뒤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34년 7만 5천프랑의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젊은 시인들과 교우하고, 흑인 혼혈 여성과 연애를 하는 등 방탕하게 지내 유산의 태반을 탕진했다. 1845년 살롱 비평으로서 문학 생활을 시작, 환상적인 산문과 시를 잡지에 투고하는 한편 미술 비평에도.. 더보기
서울(한양)의 4대문과 4소문 서울(한양)의 4대문과 4소문 알아보기 서울(한양)의 4대문과 4소문 구분 방위 문이름 문화 가치 위치 용도 내용 4대문 동 홍인지문(동대문) 보물1호 종로6가69 동쪽 관문 기가 적어 왜구침입이 잦아 명칭에 산맥의 뜻 지(之)를 넣다고 함 서 돈의문(서대문) 종로구 신문로2가 중국과의 관문 일제 때 철거 남 숭례문(남대문) 국보1호 남대문로 4가29 한양의 관문 궁궐에 직면한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기 위하여 현판을 세로로 썼다함 북 숙정문(북대문) 사적 10호 삼청동 산2-1 평상시 닫침 문을 열어놓으면 음기가 침범, 풍기문란으로 폐쇄 4소문 동북 혜화문(동소문) 성북구 동소문동 양주, 포천의 관문 일제 때 철거후1994년 복원 동남 광화문(수구문) 중구 광희동 시신을 성밖으로 내 보내던 통로 1975년.. 더보기